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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지리산은 대한민국의 22개 국립공원 중 가장 먼저 지정된 국내 1호 국립공원이다.
지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연도가 1967년인데, 당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사회 분위기와 당시 정권의 성격'과 '국립공원'이라는'자연보호'와 '여가선용 개념'에 이질감과 의문을 가질 위키러가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처음 지리산을 국립공원으로 등재하자는 이야기도 정부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추진단의 주요 구성원은 바로 '구례군 주민들'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구례중학교에서는 '연하반(煙霞班)'이라는 구례중학교 교사들을 주축으로 하는 산악회가 있었다. 이들은 한국전쟁 후 입산통제를 받았던 지리산을 55년 처음으로 허가를 받아 등정을 하였고, 현재의 '화엄사-노고단' 및 '노고단-천왕봉' 종주 등산로를 개척했다. 그러다 60년대 초, 당시 어지러운 난국을 틈탄 남벌꾼들이 지리산을 황폐화했다. 그 규모는 당시 구례를 통해서만 하루에 트럭 250대 분량이 실려나갈 정도로 엄청났다고 한다. 그들은 도벌꾼들과 잦은 다툼을 벌였지만 이 커다란 산에는 주인이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많았고, 하도 산이 넓다보니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더군다나 주인 없는 산에서 파생되는 재물에 관련한 법적 근거 같은 것이 없었으니, 구례주민들은 날로 황폐해지는 지리산을 보고 가슴만 타들어갔을터.

비록 당시 국가에는 국립공원은커녕 국립공원에 관련된 법률조차 없었지만, 지식인 계층인 교사들로 구성된 연하반은 해외의 '국립공원'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국립공원 지정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캠페인으로 사용될 자금을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당시 구례군의 가구수가 1만 2천 가구였는데, 이중 극빈 가구층 2천 가구를 제외한 1만 가구가 동참했다고 한다. 이 1만 가구가 63년에 10원씩 내서 10만 원, 66년에 20원씩 내서 20만 원을 모았다. [7]

이 자금을 토대로 추진위원회는 수차례 상경하여 정부와 국회에 건의서를 제출하였고,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국회와 정부도 관심을 보여 마침내 66년 3월 국립공원법이 제정됐다. 법 제정 뒤 정부는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했고, 여러 과정을 거쳐 이듬해 12월 지리산이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구례주민과 연하반의 노력을 기념삼아, ‘연하’는 지리산 봉우리 하나의 이름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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