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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한국에선 크레타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지만, 해외에서 크레타는 손꼽히는 여행지다. 특히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가지.[4] 매년 수백만 명의 외국 관광객이 크레타에 방문한다. 매년 트립어드바이저가 전세계 여행자들에게 투표를 받아 "세계 최고의 여행지" 랭킹을 매기는데, 크레타는 이 랭킹에서 늘 최상위권에 랭크된다.[5] 최근 들어 크레타섬에 방문하는 한국인 숫자도 점차 늘고 있다. 크레타섬 현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도 있다.
아테네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배를 타고 크레타섬에 갈 수 있다. 하니아, 이라클리오에 각각 공항과 항구가 있다. 크레타섬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사마리아 협곡, 크노소스 궁전, 하니아 항구, 엘라포니시, 발로스, 프레벨리, 아르카디우 수도원 같은 곳들이 있다.
크레타 섬의 역사는 키프로스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크레타 섬에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이 꽃피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흔적은 크레타의 주도인 이라클리오(Ηράκλειο) 인근의 크노소스 궁전 정도밖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는 벽화와 도기 등을 보면 무척이나 화려하고 생기넘치는 해양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섬의 이름인 '크레타'도 BC 8세기경의 시인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이미 언급된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스라엘 왕국과 적대하는 필리스티아인들은 크레타 출신 민족들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고전기에 이르면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촌구석 쩌리로 여겨지다가 고대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을 거치는데, 그 와중에 826년부터 960년까지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4차 십자군 원정 이후로 크레타 섬에 쳐들어온 베네치아가 접수해서 400여 년간 지배했다가 이후 베네치아인들을 쫓아낸 터키인들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1898년까지 받게 된다. (크레타 공방전 문서 참고)[6] 힘들게 섬을 정복한 오스만 측은 농민들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고 세금을 제국 내에서 가장 낮게 내게 하여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나갔다. 따라서 18세기 말엽에 이르면 섬 인구 중 절반이 무슬림이 되었으나 나머지 기독교도들도 별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이후 크레타는 잠시 크레타 자치국(Κρητική Πολιτεία)이라는 형태로 독립했다. 크레타인들은 이미 그리스 본토가 독립한 19세기 중엽부터 꾸준히 게릴라 활동을 통해 오스만 제국 정부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고, 섬의 임시정부를 출범하여 그리스와 영국 등으로 하여금 터키와 전쟁을 하도록 만드는 데 이르렀다. 이후 크레타는 자체적으로 드라크마 화폐도 찍어내고 하다가 결국 계획대로 1912년에 그리스와 합병됨으로써 짧은 역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섬의 위치가 위치인지라 크레타 섬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징으로 인한 파란만장한 역사 때문에, '동지중해의 항공모함'[7]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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