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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시 참고할 한글지도 (주요 도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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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나서 6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석유가 발견되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사람들은 '근성의 사우드 왕가가 아니었다면 독립을 포기했을 것이고, 식민 상태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으면 지금의 국가가 아니라 헬게이트가 되었을 것이다' 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왕가에 대한 지지율이 매우 높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로또급 신세 역전을 한 계기는 누가 뭐래도 석유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1938년 미국계 석유회사들이 동부 담맘 지역에서 처음으로 석유를 채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부터 이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밀접한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3년 세워진 사우디 최대의 석유회사인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의 이름이 'SAUDI ARabian-AMerica oil COmpany'에서 나왔다. 본인들 역시 석유 개발 기술력을 타국에만 의존하려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노하우를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대 파이살 국왕(1964 ~ 1975 재위)은 석유를 무기로 이스라엘을 견제하며, 동시에 보수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여성학교를 세웠고, 사우디 아라비아의 고질적인 고민인 먹고 마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농장과 수도관 공사를 기획하며 국가 개혁을 이끌었으나, 1975년 3월 정신병을 앓던 조카 파이살 빈 무사드 왕자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이를 두고 미국 및 유대인들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도 있고, 개혁을 반대한 와하브 보수파들도 파이살 국왕 제거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많이 제기되고 있으나, 그냥 미친 조카의 단독 범죄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무사드 왕자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벌어진 적은 없으나 이라크와 국경 분쟁으로 여러 번 사소한 전투가 있긴 했다.

그러나 21세기를 혼돈으로 몰고 가는 중동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가 와하비즘을 등에 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의 성지를 가지고 있는 정통성과 엄청난 양의 석유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애증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석유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무력을 썼을 놈 취급이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을 비롯한 중동의 문제는 대부분 석유 및 지중해와 인도양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지정학적 요소에서 나왔다. 석유 빼고는 자원이란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2013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목금 주말제를 고수하다가 2013년 8월부터 목요일은 주중으로, 토요일은 주말로 해서 주말을 금토로 바꿨다.사우디에서 금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토요일에 한국에 도착하면 일요일까지 주말이 3일이 된다 동시에 대체 휴일 제도를 도입했는데 금요일과 토요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말에 맞춰 공휴일이 금요일에 겹치면 목요일을, 토요일에 겹치면 일요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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