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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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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스페인의 식민지화 이전 지금의 니카라과 지역에는 니카라오 족, 초로테가 족, 미스키토 족 등의 아메리카 원주민 종족 집단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침략으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여러 중남미의 나라들처럼 대농장주들이 원주민을 노예나 소작농으로 부려먹어 그 생산물을 수출하는 형태가 되었다. 

스페인인들의 이주로 퍼지고 시작한 천연두와 황열병 같은 질병이 본격적으로 퍼지자 가뜩이나 강제노동으로 면역력이 약해진 원주민들을 휩쓸었고 자연히 원주민들의 인구가 격감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흑인노예들을 상당수 수입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다가 스페인이 니카라과와 제3국의 무역을 금지하자 농장주들은 이에 반발해 독립 운동을 일으켰다.

1821년 니카라과는 타 중미 국가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멕시코 제국의 한 부분으로 스페인에서 독립했다. 그러다 1823년 멕시코에서 떨어져나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다 혼란 끝에 1838년 니카라과는 중미 연방에서 독립한다. 영국은 이 무렵 니카라과 동해안을 장악했으며, 북부 레온 중심의 자유주의자와 남부 그라나다 중심의 보수주의자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끼리 내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고용된 미국인 백인 용병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가 황제 노릇을 한적이 있었지만 군벌들에게 다구리를 맞고 쫓겨났고 보수주의자들이 집권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니카라과에서 커피 산업과 바나나 산업이 나타났는데, 이들 신흥 소지주들이 감히 대지주들 땅을 뺏을 순 없었으니 원주민 땅을 뜯어갔다. 그러자 염료와 목축을 하던 대지주들도 커피와 바나나 재배를 시작했다. 1890년대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 정부는 교회의 땅을 뺏어 커피 농장으로 만들었으나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미군이 파견되어 니카라과는 19년간 미국의 간섭을 받았다. 산디노가 이에 저항해 게릴라 활동을 하다 1934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에 의해 죽는다. [4] 한편 이 무렵 국방군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으며 그가 암살당한 후에도 아들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와 그의 동생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연달아 니카라과의 권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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