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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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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통치[5]를 받다가 19세기 콜롬비아가 시몬 볼리바르의 독립 운동으로 독립을 쟁취하면서 콜롬비아의 일개 주(州)로 함께 독립하였다. 그러나 콜롬비아 육지 본토와 붙어있으면서도 깊은 정글에 격리된 지역적 특성과[6] 콜롬비아 본국 정부에게 식민지 같이 착취당하던 터에 종종 분리 독립 운동을 일으켰으나 대부분 콜롬비아군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당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이 중남미로의 영향력 확장을 시작하면서 중요한 거점으로서 파나마를 주목하였다. 미국은 콜롬비아 정부에 파나마 운하 착공을 위한 자금을 제시하고 사업에 착수하려 했지만 콜롬비아 상원이 대가를 더 요구하자 방침을 바꿔 파나마 지역의 토착 영주들이 콜롬비아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후원해 아예 파나마를 1903년에 콜롬비아로부터 분리독립시켜 독립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윽고 미국은 파나마 정부로부터 운하 착공에 대한 전권, 완성된 운하의 운영과 관리권, 그 보호를 위한 군대 주둔에 관한 협정까지 일사천리로 맺고 착공에 들어가 1914년에 파나마 운하를 개통시켰다. 그 결과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의 항로가 획기적으로 단축되는 쾌거가 이루어졌다.

사실 파나마 운하 공사는 수에즈 운하를 완성한 프랑스인 외교관이였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 1805~1894)가 이미 계획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독한 열대의 더위와 막대한 사업비, 그리고 무엇보다 말라리아를 퍼뜨리는 모기들의 습격(...)을 인부들이 견디지 못해 포기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모기가 많은 지역인데 당시에는 말라리아 매개체를 개미라고 알아 애꿎은 개미를 잡겠다고 침대 다리를 물그릇에 담궈놓는 등의 삽질을 해서 모기가 더 창궐하게 되었다. 9년이나 시간을 들여 막대한 돈을 날린 이 운하공사의 대실패로 레셉스는 파산했고 그는 정신이상까지 겹쳐 늘그막을 비참하게 지내며 사망한다.

그로부터 20년쯤 지나서 말라리아 매개체가 모기라고 밝혀졌고, 공사를 맡게된 미국은 착공에 들어가자 프랑스 측의 대실패를 교훈삼아 모기가 살만한 곳은 죄다 없애버리는 것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깨끗한 물을 공급할 시설을 건설하고 건물마다 살충제를 가득 쌓아놨으며 모기의 번식처가 될 만한 웅덩이는 죄다 메꿔버리고 늪지와 연못에는 석유를 뿌려버리는 철저한 방역 작업을 하여 모기들의 씨를 말리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늪지대에 석유를 붓는다는 막장 방역법 탓에 애꿋은 다른 동식물까지 몰살당하여 생태계가 심하게 파괴되면서 파나마는 다른 면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당시에는 생태계에 대해서 관심이 거의 없던 시절이니 어쩔수 없긴 했지만...

이 파나마 운하의 권리는 사실상 영구 임대나 다름없어 미국은 파나마를 속국처럼 마음대로 다뤄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파나마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던것은 아니라서 사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독재자가 수십년간 통치하던 기간도 있었다. 아래에 나오는 오마르 토리호스는 전반기, 마누엘 노리에가는 독재정권 시기의 후반기를 담당하던 인물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중남미에서도 민족주의의 열기가 고조되자 파나마에서도 운하에 대한 이권을 회수하려는 운동이 거세게 전개되었다. 운하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운하에 대한 문제는 파나마 전체의 사활을 건 이슈였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예전처럼 무력 진압 따위를 할 수 없었던 미국은 어쩔 수 없이 1999년에 파나마 정부에 운하에 대한 모든 권한을 반환하기로 약속했고 오마르 토리호스와 협상으로 이를 실행하였다. 그럼에도 파나마에는 지금도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1989년 12월에는 마누엘 노리에가라는 파나마 장군[7]을 마약 밀수 혐의로 군사 작전을 벌여 체포하는 일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의 이권 문제에 미국이 얼마나 민감한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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