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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경상북도 경주 관광지도 최신판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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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경상북도 동남부에 위치한 시. 동남쪽으로 동해, 서쪽에는 영천시 및 청도군, 남쪽으로 울산광역시, 북쪽에 포항시와 접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평양직할시와 더불어 한반도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의 기록을 따르면 무려 기원전 1세기 이전부터 성읍국가가 건설되었다. 비슷한 시기[8]에 고조선의 왕검성이 함락되었으니, 경주시는 도시 전체가 문화재인 것이다. 신라 건국 이후에는 서라벌이라고 불리는 천년의 고도(古都)였으며,[9] 조선 시대에는 안동시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을 위시한 영남 남인의 구심 도시이기도 했다. 수많은 문화재가 있는 동시에 한국 유수의 관광도시다.

신라의 수도로 남북국시대 때는 인구 수십만명이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고[10] 고려 초중기에도 동경이라는 명칭을 썼을 정도였으며, 고려 후기에 무신정권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나서는 3경에서 제외되고 이어서 몽골의 침략으로 황폐화되었다. 그러나 다시 동경으로 복권이 되어 고려 시대 내내 중요한 도시로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도 경상도의 경자가 경주에서 따왔고 부로 지정되는 등 현대의 광역시급 지위는 되었을 정도로 경상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당시 경주시의 단위는 부(府)였고, 그 수장은 부윤(府尹)은 종2품으로 관찰사와 동급이었다. 특히 영남 남인의 학문적 기반인 주리론의 선구자 이언적이 태어난 양동마을과, 그를 모신 옥산서원이 있을 정도로 영남 남인의 자존심이었다. 이러한 경주의 규모는 일제 강점기까지도 국내에서 수위를 차지했지만, 당시 대구가 성장해 지금의 경주와 상주의 자리를 대신했고, 지금은 유적지가 많아 개발이 힘들어서 바로 이웃 도시인 포항시와 울산광역시가 성장하였다. 또한 인접해 있지는 않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가 있었기에[11] 지금은 소도시로 몰락하였다. 학창시절 지겹도록 수련회 및 수학여행을 오게 되는 곳이기도 하고, 사학과 학술답사로도 자주 오는 곳이다. 운이 없으면 초, 중, 고등학교 각각 한 번씩 3번을 오게 될 수도 있고, 학부 시절 사학과 답사를 여기로 오면 그랜드 슬램 달성(...).

대한민국의 시 중 면적이 2번째로 넓다.[12] 참고로 1위는 같은 경상북도의 안동시이고, 3위 역시 경상북도인 상주시[13]이다. 그래서 경상북도가 도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것이다.

천년의 고도(古都)였다는 점과 단골 수학여행지, 유수의 관광도시라는 점, 시 전역에 있는 유물 덕에 개발이 힘든 점(...)에서 교토시와 아주 기막힌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그런고로 일본 창작물이 한국으로 번안될 때도 교토가 경주로 로컬라이징된다.

동해와 접한 도시이지만 일반 대중들은 경주가 해안도시란 걸 잘 모른다. 그 이유로는 아마도 바다와 접해 있는 인근의 해안도시들(울산광역시, 포항시, 부산광역시)과는 달리 여기는 시가지가 바다와 한참 떨어진 내륙에 있는데다 문화유적이 워낙 많아서 관광도시란 인상이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4] 또한, 경주시내에서 동해로 가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해서 거리감이 꽤 있기도 하다.[15] 알고 보면 해수욕장도 제법 많은데 사실 문무대왕릉(대왕암)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답 나온다(...).[16] 문무대왕릉과 접해있는 곳이 바로 봉길해수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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