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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홋카이도는 일본 북방 개척의 상징이며 만주국과 더불어 당대의 일본 작가들 사이에서 이상향을 일컫는 배경으로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 땅의 아이누에게 홋카이도 '개척'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가 그러했듯이 고통스러운 강제 이주, 개척, 착취와 수탈의 역사다. 일본 본토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에게도 본토 빈민들보다는 나았다는 것뿐이지, 홋카이도에서의 생활이 고통스럽긴 매한가지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벼농사가 힘든 기후와 일본인 기준으로 매우 추운 겨울로 인해 홋카이도 자작농들의 수입은 본토의 소작농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한다.[30] 여하튼간에 '개척지'답지 않게 55년 체제하에서 사회당의 세가 강했고, 2000년대에 민주당이 우세였던 것도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고, 지역 유력신문사인 홋카이도 신문의 논조도 진보 성향이 강하다. 일본에서 보수적 논조로 분류되는 후지TV의 계열국인 홋카이도문화방송(UHB)도 여기서는 비교적 진보적인 논조.
현재는 지하 자원 창고로서의 가치가 높지만,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일본도 러시아도 큰 가치를 두지 않던 땅이었다. 워낙 기후가 험하고 땅 자체도 경작이 거의 불가능한 불모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일본에서는 이 땅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러시아가 남하하기 전까지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31] 실제로 일본이 홋카이도를 얻어낸 것에 대해서, 그 따위 쓸모 없는 땅을 얻어서 뭐하냐는 식의 부정적인 여론도 다수 존재했다. 물론 땅이야 가지면 가질수록 좋은거라서 홋카이도를 넘어 쿠릴, 사할린 전체까지 차지할려고 했지만.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홋카이도, 사할린보다는 훨씬 이점이 많은 연해주나 만주 방면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서, 그래도 도시의 꼴은 갖추고 있는 일본, 러시아 본토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현재도 홋카이도, 사할린은 2차대전 패전 당시와 인구나 인프라가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플레이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 지역의 영토상황이 좀 복잡한데 제2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사할린 섬의 남반부와 쿠릴 열도 전체까지도 일본령이었다. 18세기 말부터 일본과 러시아가 차례로 이 지역을 탐사하면서 아이누 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을 편입하고 대립했다. 그러다가 1855년 러일화친조약에 따라 일본이 쿠릴 열도(일본명 지시마 열도) 남부 4개 도서를 영유하게 되었고[32] 그 이북은 러시아가 가지게 되었으며, 사할린(일본명 가라후토)는 러일 양국 주민의 공동 거주지로 하였다. 일본이 차지한 쿠릴열도 남부의 네 섬은 홋카이도의 일부로 삼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동방 진출 압력에 의해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러시아에 사할린을 전부 넘기는 대신 일본은 쿠릴 열도 전체를 받기로 했다. 이때부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쿠릴열도 전체가 홋카이도 소속이 된다. 이후 러일전쟁이 터지고 일본이 승리하면서 일본은 그 보상으로 전 사할린을 요구했으나 결국 사할린은 남북으로 쪼개서 남부를 일본이 가지게 된다. 사할린 남부는 일본의 외지(外地)[33]의 일부인 '가라후토'로 통치되다가 2차대전 중인 1943년에 내지(일본 본토)로 편입되었다. 2차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에는 일본이 소위 '본토 결전'을 앞두고 지방 총감부(地方總監府/地方総監府)라는 것이 설치됐었는데, 삿포로에 북해 지방 총감부가 설치돼 홋카이도와 가라후토(남사할린)을 관할하게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엔 본토부터 오키나와에 이르도록 폭격을 맞던 일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유일하게 전쟁의 포화를 모면했다고 봐도 좋은 지역. 사실 두들겨봤자 별 성과가 없는 땅이기도 하지만 만약 공격 주체가 미국이 아닌 소련이었다면 상황이 좀 크게 달랐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홋카이도에 평화적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까닭은 이 때의 영향일 수 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서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가 러시아의 전신격인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소련은 심지어 홋카이도조차 반띵할 것을 요구했고 더 나아가서 전 홋카이도를 병탄하려 했다.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으로 획득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할린 남부와 쿠릴 열도 중·북부는 포기했지만, 1855년 이후로 계속 일본의 땅이었던 쿠릴열도 남부의 네 섬은 자국 영토이자 홋카이도의 부속 섬이니 구 소련 및 현재의 러시아가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해 와서 분쟁 지역이 되었다. 지금도 해당 지역에는 일본어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특히 쿠릴 열도에는 약 200여개에 달하는 일본인 무덤이 있다. 근래에 러시아 정부에서 여기에 무덤이 있는 유가족 400여명에게 비자 없이도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게 해 일본인들이 성묘하러 오기도 했지만 영토분쟁이 재점화되면서 그마저도 다시 위태해진 상태.
냉전이 끝난 지금도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서 북방영토(쿠릴 열도 남부 네 섬) 반환을 주장하고 있어 러시아 옐친 시대에 최남단의 섬 두개를 돌려주려다가 일본이 다 돌려달라고 해서 무산되었다. 홋카이도청 현관 위에도 북방영토 반환에 관한 문구가 써있을 정도이고 일본에서 그린 홋카이도 지도 상당수는 쿠릴열도 남부 네 섬을 포함해서 그리고 있다. 정부의 입장과 무관하게, 일부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일본인들은 쿠릴열도 전체와 남사할린, 심지어 전 사할린까지를 다 돌려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 공산당은 가장 강경한 입장인데 쿠릴 열도 전체와 남사할린을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75년에 일본이 사할린을 러시아 영토로 하는 대가로 쿠릴 열도 전체를 지배하기로 했었으니까 그 상태로 복구돼야 한다는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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