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DF 개요
양주라는 지명은 1018년 경기도가 경기라는 지명이 부여되었을 때부터 고려 임금 현종이 이 지역이 버드나무가 무성히 자랐다고 하여서 버들고을이라고 하여 양주(楊州)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구려 때 매성이나 창화로 불렸고 신라 때 내소로 불렸다가 고려 때 견주(見州)로 불렸던 것을 양주로 지정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양주목'으로 품계상으로도 높은 동네였고, 원래는 현재의 의정부시, 동두천시, 남양주시, 구리시, 연천군 전곡읍 그리고 서울특별시 동북부 일대의 노원구, 도봉구, 중랑구, 광진구[4] 등에 이르며, 더 나아가 고려시대에는 서울 강북 대부분(용산구 일대 제외)과 고양시 일대도 양주 소속이었던 매우 큰 고을이었지만,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 고양주면(오늘날의 광진구 동부와 송파구 잠실 일대)이 고양군으로(이후 1949년 서울에 편입), 전곡(당시 영근면)이 연천군으로 넘어가고, 1963년 서울 대확장 때 오늘날의 노원구, 도봉구, 중랑구 일대가 뜯겨나가고 동시에 군청소재지이자 가장 발전된 곳이었던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돼 떨어져나가고, 1980년에는 월경지였던 남양주(구리 포함) 지역이 아예 남양주군으로 분리되고, 이듬해인 1981년에는 동두천읍마저 시로 승격돼 떨어져나가면서 쩌리 지역만 남게 되어 발전이 꽤나 늦었다. 만약 양주시 영역이 1949년 이후에 지금까지 유지되었으면 양주시의 인구는 284만명이 된다.
1980년 남양주군을 분리할 때 지금의 양주를 '북양주'로 개칭하려 했으나, '북'이라는 어감 때문에 그대로 양주라는 이름을 유지해 현재에 이른다.# 사실 (북)양주 자체가 역사적으로 옛 양주읍치가 소재한 '오리지널 양주'라고 할 수 있으므로 굳이 '북'을 붙일 필요가 없기도 하다.
당장 의정부시, 동두천시, 구리시, 남양주시에 비해 한참 늦은 2003년에 시로 승격했다. 경기도 광주시와 상당히 흡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당장 고려 시대때 존재했던 양광도의 '양광'이 바로 양주와 광주를 뜻하는 것이었다. 각각 한수 이북과 이남을 대표하는 큰 고을이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양주시청 청사 지하에는 서울시청과 같은 1급 대피소가 있다. 심지어 서울시청보다 먼저 1급 대피소가 운영되었다. 대피소를 거치면 대회의실로도 갈 수 있다.
언어적으로도 양주시는 경기북부의 대표 방언인 양주 방언권을 대표하는 도시다. 서울 사투리와 거의 비슷하며 지금을 지끔, 먼저를 먼처, 혼자를 혼차, 조금을 쪼끔, 나무를 낭구, 이제를 인제, 이렇게 사투리를 쓴다. 양주 방언권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및 강북구(무수골, 우이동 지역), 양주시 전역, 의정부시, 포천시 전역, 동두천시, 연천군 전역이 양주 방언권에 해당한다. 서울 사대문의 토박이들이 쓰고 있는 서울 사투리(구 고양군 신도읍 지역은 서울 방언권)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강원도 영서 지역과 경기 동북부 지역(구리, 남양주, 가평)의 방언과는 다른 편인데, 이 지역(춘천, 홍천, 원주, 횡성, 철원, 화천, 인제, 양구에서 사용)보다 억양이나 말이 제법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
반응형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도 평택 관광 여해잊도 - 추천 가볼만한 곳 안내 (0) | 2020.02.17 |
---|---|
경기도 이천 관광 여행 안내지도 - 추천 가볼만한 곳 (0) | 2020.02.16 |
경기도 화성시 관광여행지도 - 추천 가볼만한 곳 안내 (0) | 2020.02.14 |
경기도 성남 관광여행지도 - 추천 가볼만한 곳 안내 (0) | 2020.02.13 |
동남아 필리핀 보라카이 호텔 및 관광지도 - 추천 가볼만한 곳 (0) | 2020.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