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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학교(조선무선강습소부터)의 초대 이사장 및 설립자의 이름은 조광운(曺光云)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도 '광운대학교' 라 이름지어졌다. 조광운은 1899년 4월 11일(양력)에 태어났는데 그의 호는 '화도' 이며 학교 건물중 '화도관' 이라는 건물에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조광운의 10대 시절. 최소 1910년 이후, 즉 경술국치 이후에 상하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이쪽 일에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언급은 되지 않았으나 그의 학문적인 재능이 당시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에게 인정받아 그는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때 당시 유일한 사립대학교였던 일본 와세다 대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그가 30대가 될 때까지 그는 여러가지 직업을 경험했는데 첫째로는 쌀가마니 운반노동자, 둘째로는 택시 운전사 , 그리고 일본 부잣집의 지배인으로 일했는데 그 부잣집 사이에서 그의 근면 성실함이 꽤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하던 도중, 그는 자기가 모았던 재산을 전자 기업에 투자를 했는데 그 투자가 잭팟이 터져서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 물정 없던 16세 청소년이 뭘 알겠는가. 사기꾼에게 털리고 재산을 흐지부지 탕진하여 90퍼센트의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돈을 가지고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일본으로 부터 백열전구를 수입해서 파는 사업이였다. 그러다가 사업을 확장하여 일본으로 부터 기계를 수입하여 전자 조립 공장을 만들었으며 한국부터 만주까지의 이쪽 관련 사업에 꽤 큰 손이였다고.. 이렇게 돈을 잘 벌어들인 결과 겨우 20대에 몇백만 달러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재벌이 되었다.

그의 사업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몇년이 지나자 조광운은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을 보면서 '이 돈을 더 뜻깊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파나소닉의 전신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설립자였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로부터 '교육기관을 설립해 보는게 어떻겠소?' 라는 조언을 들었고, 그 생각에 동의한 조광운은 1934년 '조선무선강습소'를 설립하고 그후 1963년에 광운전자공과대학, 마침내 1988년 4년제 종합대학 '광운대학교'로 인가를 받아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교를 만든 설립자 자체가 전자공학에 몸을 담고 있었고 학교의 시작또한 '조선무선강습소' 라는 전자공학 전문 교육기관.
우리나라 전자공학의 처음와 끝을 함께하고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연구순위에서도 2010, 2011, 2012 3년 연속 전임교원 1인당 논문 순위 2위를 달성하였고, 외부 연구비 2위, 교내 연구비 8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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