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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유럽여행 체코 프라하지도 시내지도 (관광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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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처음 9세기에 프라하 성이 축조되었고,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현재의 구 시가지의 광장에서 교역이 시작되면서 볼티바 강의 나루터의 취락에서 교역 도시로 발전했고, 1085년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4세기에 이르자 카렐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도시는 더욱 발전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시의 인구는 4만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인 1344년에 주교의 도시에서 대주교의 도시로 승격되었고, 1346년엔 카렐 4세의 통치 아래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348년엔 '프라하 카렐 대학교'[5]가 건립되었다.

그러다가 1378년 얀 후스의 종교 개혁으로 14~15세기에는 후스 전쟁의 싸움터가 되었다. 이후 왕위가 합스부르크 가문에 넘어가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주요 세 도시 중 하나로 등극했고(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15~16세기에는 고딕 건축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정치적인 의미는 상실하였으나 1583년 루돌프 2세의 통치 아래 잠시나마 두 번째로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어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신교의 자유를 두고 황제 페르디난트 2세와 보헤미아 귀족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1618년 보헤미아의 귀족들이 프라하 성에서 황제의 대리인들을 투척하면서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6] 17세기에는 바로크 건축이 번성하였고 18세기말부터 다시 수공업 등이 일어나 경제적으로 회복되어 인구도 8만을 헤아렸다. 그 후에도 인구는 늘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대의 공업 도시로 성장하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함께 그 수도가 되었다. 1968년의 프라하의 봄 사건으로 유명하며, 1993년 슬로바키아의 분리에 따라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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