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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세이셸의 섬은 12세기경부터 아라비아인·페르시아인, 16세기 초에는 포르투갈인의 왕래가 있었으나 그 후 18세기경까지는 무인도였다. 1741년과 1744년에 프랑스인이 탐험하여 마에 섬을 프랑스령(領)으로 하였다. 프랑스인이 정주하게 된 것은 1770년대로 그들은 노예를 이끌고 특산물인 바다거북을 남획하고 목재를 벌채하여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프랑스 당국은 천연자원이 고갈된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하여 이후 이주자들은 쌀·목화·옥수수 재배를 시작하게 되었다.
19세기 초의 나폴레옹전쟁 때 인도양의 세이셸 제도 부근도 영불해전(英佛海戰)의 무대가 되어 세이셸은 모리셔스 제도와 함께 영국에 점령된 결과 1814년의 파리회의를 거쳐 정식으로 영국령이 되었다. 이후 1세기 동안 영국은 이들 제도를 통치하였다. 1903년 세이셸은 모리셔스와 분리하여 영국 직할식민지가 되고, 1970년에는 대폭적인 자치권을 획득하였다가 1976년 6월 마침내 세이셸공화국으로서 독립하였다.
세이셸의 초대 대통령 만캄은 구(舊)종주국 영국과의 우호친선관계 유지를 바탕으로 온건한 중립정책을 취하고 내정면에서도 산업의 개발, 특히 관광사업의 촉진이라는 시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정(施政)은 불과 1년으로 그쳤다. 1977년 6월 대통령 만캄이 영국연방 회의에 출석하기 위해서 런던 체재 중 수도 빅토리아에서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총리인 프랑스 알베르 르네(France Albert Rene)가 정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대통령 르네는 1979년에도 재선되었으며, 공산정권을 내세워 1977년에는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이듬해에는 중국·북한을 방문하는 등 좌경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와 같은 르네 공산정권에 대한 반발로 1978~1979년에는 반정부 쿠데타 계획이 있었고, 1981년 11월에는 외국인 무장그룹이라고 부르는 일단의 세력이 세이셸 공항(空港)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1982년 1월 UN의 조사단이 세이셸에 도착하여 진상규명에 나서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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