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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전라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시. 더불어 호남의 최북단이다. 시의 동쪽이 완주군에, 북쪽이 논산시와 부여군에, 서쪽이 군산시에, 남쪽이 김제시와 전주시에 접해 있으며, 인구 약 30만 명으로 호남 전체에서는 광주광역시, 전주시에 이어 세 번째, 전라북도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며 전북대학교 익산캠퍼스, 원광대학교가 소재한다. 훗날 전주시가 광역시로 빠지면 전라도 최대의 시(巿)가 된다. 호남의 관문이자, 호남권과 충청권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이다[3].
본래 익산 시내는 솜리, 솜니로 불렸다. 일본식 지명인 이리(裡里)는 이곳의 순우리말(구어) 옛 지명인 솜리, 솜니(솝리)를 한자로 옮긴 것. 널따란 만경평야에서 구릉이 져, 멀리서 보면 속(솝)으로 들어간 마을이라는 뜻. #[4]
이렇듯 솜리는 만경강을 낀 만경평야 내 작은 촌락을 가리키는 곳이었는데, 조선총독부가 만경-김제평야에서 수탈한 쌀의 수송을 위해 호남선을 부설하고 익산역(당시는 이리역)을 세우면서 급격히 외형을 달리하게 되었다. 호남선(대전광역시-목포시)과 전라선(익산시-여수시)이 교차하는 철도 교통의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백제 이후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익산 지역의 중심은 미륵산 근처의 금마와 호남대로의 길목인 여산이었다. 평지 위에 인위적으로 설계된 익산 시가지(이리)는 백제 시절의 시가지(로 추정되는 곳)와는 다른 위치에 놓이게 되었고,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된 미륵사지나 왕궁리 유적 등이 보존된 측면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최근 미륵사 등 대규모의 백제 고도 유적지가 발굴되는 것으로 보아 백제 무왕 전후 대에 이 곳으로의 천도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 왕궁리 유적이 발견됨에 따라 한때 백제의 수도였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아직까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고대국가의 수도에 위치해야하는 궁성(왕궁리유적), 종묘(제석사지), 왕릉(익산 쌍릉), 산성(오금산성, 미륵산성) 등이 존재하는것이 확실해 짐에 따라 확정적이라 볼 수 있다.
현재는 저렴한 집값[5]과 수출자유지역(공단)을 무기로 전통적 고도인 전주와 오래된 항구도시인 군산과 함께 느슨한 농공도시로서 전북의 발전축을 형성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중간 기폭제가 된 삼례 집회(교조 신원 운동)가 열린 완주군 삼례읍과도 접해 있으며, 한국의 자생종교인 원불교(삼성그룹 가의 종교로 유명)의 발원지라는 역사성을 배후로 최근 새만금 개발과 중국 경제의 발흥에서 발생하는 변화의 중심에 있기도 하다.
'익산(益山)'은 '산이 더해지다'란 뜻인데, 실제로 익산 지역은 산보다는 평지가 많은 편이다.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고려 때는 '익주(益州)'였는데, 조선 태종이 "'주(州)'로 끝나는 고을이 많다"고 해 그 중 일부를 '산(山)'이나 '천(川)'으로 개칭하면서[6] 익주 역시 '익산'으로 개칭돼 현재에 이른다. 익천은 발음이 좀 거시기하거든
호남선 이리역이 들어서면서 일제는 익산군의 전통적인 중심지인 금마 지역 대신 새로운 중심지가 된 이리 지역을 '익산면'으로 명명하고, 1931년 면명 그대로 '익산읍'으로 승격했다가 곧바로 '이리읍'으로 개칭했다. '이리'라는 지명은 '속마을'이라는 뜻으로, 만경강 일대에서 자란 억새밭 지대에 작은 마을이 있다는 것을 보고 '속리' 라고 불린 것을 한자로 '이리(裡里)'라 고쳤다.[7] 도농 통합 때에는 '익산'이라는 지명이 역사적으로 오래되었던 점과 이 지역의 대표 지명이라는 점이 고증되어서,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을 통합할 때 통합시 명칭을 익산시로 해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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