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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산달도 패총에 빗살무늬 토기 등의 신석기 유물, 소동리에 간돌칼, 사등면에 남방식 고인돌 등 여러 유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 문화가 육지 못지않게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시대 초기에는 변한의 영역이었는데, 거제에 독로국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5]
가야가 신라에 병합된 후 677년에 문무왕이 거제에 상군(裳郡)을 두었다. 이 당시 상군의 관소는 사등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거제군으로 고치고 속현으로 아주현(아주동), 남수현(南垂縣, 현 남부면), 명진현을 관할했다. 신라 9주 5소경 중에서 지금의 진주시를 중심으로 한 강주에 포함됐다.
고대부터 일본을 왕래하는 길목으로서[6] 변한 ‧ 가야 시절에는 한 군현 ‧ 일본과 교역하는 항로였다. 김해 등지에서 생산된 철은 낙랑 ‧ 대방으로 갈 땐 견내량을 지나 서진하고 일본으로 갈 땐 거제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다 지세포 등지에서 대마도로 건너갔다.[7]
이는 대한해협의 해류와 편서풍으로 인해 대마도에 도달하지 못하고 동해로 떠내려가 버리는 위험이 있어 최대한 남서쪽인 거제 남단에서 출발하는게 안전했기 때문이다. 돌아올 때는 대마도 남단에서 출발하여 거제도 남단에 도착한 뒤 해안선을 따라 김해 창원 통영 등지로 이동하는 것이 기본 항로였다. 이 항로는 조선 전기까지 지속되어 여말선초 무렵에도 정몽주, 신숙주 등 초기 통신사는 부산이 아닌 거제의 지세포나 다대포를 통해 일본을 오갔다.[8] 이 때 방문한 통신사들은 거제의 인상깊은 절경을 보고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개성과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의 길목이자 이를 노리는 왜적을 방어할 군사적 요충지가 되었고 군마와 목재도 생산하였다.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때는 견내량과 동부면이 고려 수군의 진영이었다. 한 때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주민이 비기도 했지만 왜구를 물리친 수군이 주둔하면서 원래 모습을 찾았고 3차에 걸친 대마도 원정(1389년 창왕, 1396년 조선 태종, 1419년 세종) 때 원정군의 출정지가 되기도 했다. 조선 태종은 이 수군을 개편하여 동부면 탑포와 오아포에 경상우수영을 설치하고 수많은 예하 진을 두었다.[9]
섬인데다 상주한 군영이 있어 관리 ‧ 감시가 용이하다 보니 유배의 역사가 많다. 무신정변이 일어난 고려 중기와 역성혁명이 일어난 조선 건국 시기에 이주된 고려 왕족들의 집단 거주지였으며 의종이 거제 둔덕기성에 폐위되었다. 의종을 향해 부른 고려가요 정과정의 작가 정서나 연산군 때 사화를 겪은 김세필과 이행, 예송을 겪은 송시열과 같은 수많은 인물들의 유배지이자 유배문학의 고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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