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아르헨티나 여행시 참고할 한글 여행지도

반응형


PDF 개요


르헨티나는 2차 대전 이후 후안 페론과 그 부인 에바 페론에 의한 페론주의 정권이 1955년까지 집권했다.

그러나 1955년 쿠데타 이후로 페론이 축출당하면서 급진시민연합이 집권하다 군부가 나란히 집권하는 혼란기를 겪었다. 1973년에 페론주의자들이 16년만에 재집권하였으며 그해 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후안 페론이 선출되었지만 후안 페론은 오래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고, 후임인 이사벨 페론은 오일쇼크로 인한 침체에 무능한 대처로 일관하여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고 결국 군부쿠데타로 축출당하면서 민주화 직전까지 군사독재정권이 집권하였다.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은 외국으로부터 외채를 대거 끌여들이면서도 내핍조치를 취해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발은 거세졌고, 당시의 고이율 상황까지 겹쳐지다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파탄에까지 이르렀다.

군부는 포클랜드 전쟁까지 일으켜 상황을 반전하려 했지만 결국에 전쟁에서 참패하고 1980년대 민주화 이후로는 급진시민연합[7]과 페론당이 번갈아서 집권하였지만 2000년대 초반 경제위기속에서 급진시민연합이 군소정당으로 몰락하고 페론당 내에서도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나 책임론을 놓고 갈등을 벌여 수여개의 성향이 다른 정당으로 분리되었으며 이중에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소속된 중도 좌파 성향의 승리를 위한 전선이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 물론 지지율이 쭈욱 유지된 건 아니고 2008년부터 200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수출세 인상파동[8]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져서 2009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하였으며,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경기침체와 연 20%가량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30%대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장을 역임했던 공화주의 제안당 소속의 마크리가 2차 선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집권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치와 경제를 말할 때 흔히 페론주의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르헨티나 내에서 후안 페론이 현재에까지 아르헨티나 정치구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 자체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한상 간과되는 점은 페론주의 내에도 수많은 분파가 있었고, 비 페론주의 정당들이 집권한 기간도 예상 외로 길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웃긴건 후안 페론이 표푤리스트로 욕먹는건 스페인어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인데도 정작 경제지표를 보면 페론주의자가 집권했을 때 비 페론주의자들이 집권했을 때보다 그나마 경제적인 상황은 나았다는 점이었다.[9] 이는 비 페론주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페론주의 정권이 싸놓은 똥을 수습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키운다거나 아니면 페론주의를 극복한다면서 되려 외채를 실컷 늘려먹다보니 경제를 더욱 말아쳐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를 망치는 원흉 소리를 듣고있으면서도 현재까지고 생명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 직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페론주의자들이 정의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으로 묶여있기라도 했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경제위기를 거친 이후로는 여러 다른 성향의 정당으로 분당되다 보니 페론주의가 어떤 것인지 따지는 것은 더욱더 힘들어졌으며, 심지어 비 페론주의 성향의 마크리 정부에서조차 보수적 페론주의 성향의 정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을 지경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