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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칭타오(청도) 추천일정입니다. 여행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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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개요


칭타오 역사

역사적으로는 평범한 어촌이였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항구 만들기 딱 좋은 위치라서 나름 이름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기록이 나올 정도.
대부분 기록이 즉묵(即墨, 지모)이라는 상위 군현에 속해서 나오고 근대까지도 즉묵이 훨씬 더 큰 중심 도시 였다. 부산과 동래의 경우와 비슷하게 현재는 칭다오가 넘사벽으로 커졌고 즉묵은 칭다오의 현급 도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 말 칭다오가 위치해 있던 자오저우 만(膠州灣, 교주만)이 독일 제국에게 할양되어 해군 기지인 키아우초우가 되었다. 칭다오는 키아우초우의 중심지였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신경쓰지 못하는 틈에 일본 제국이 이곳을 점령했다. 1927년 1차 산동파병과 1928년 2차 산동파병 등 일본제국의 중국 침략의 기지로 활용되었으나 열강의 압력과 중국인들의 반발로 인해 중국에 반환하게 된다. 그 후로 국민당 정부 아래서 12개 직할시 중 하나로 지정되어서 지역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비록 국민당 정부 시절에 지정된 직할시였지만 산둥성내에서 성도인 지난을 능가하는 경제력과 인구를 가지고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기에 은근히 직할시로 독립하길 원하는 시민들이 있다. 

이후 중일전쟁에 다시 일본에게 점령되었다가 일제가 패망하게 되면서 중화민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국공내전에서는 화북지역 국민당 최후의 보루로 버티다가 1949년 6월 2일에 공산당에 점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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