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중국 소주(쑤저우) 한글판 지도 pdf 공유합니다. 다운 받으세요.

반응형


PDF 개요


쑤저우의 역사

상고시대 에는 월족의 일파인 백월족(白越族)의 땅이었다.[9] 상나라 말기에는 희성 주씨의 수령인 고공단보(古公檀父)의 아들인 태백(泰伯)과 중옹(仲雍)이 현명한 계력(季歷)에게 양보하고자 섬서성 기산의 주원을 떠나 남쪽으로 달아나 장강 이남의 고소(姑蘇)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니 그 나라가 구오(勾吳) 혹은 공오(工吳)라고 칭해지는 오(吳)나라다.

세월이 흘러 주간왕 15년(기원전 585년), 춘추시대에 이르러서는 오나라 군주인 수몽(壽夢)이 칭왕을 하고 패권을 다투던 초(楚)나라를 견제하려는 진(晉)나라의 지원을 받아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수도로서 기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와신상담의 주인공인 부차가 다스리던 그 오나라가 맞다. 춘추전국시대까지만 해도 개발이 더디고 생산력이 낮은 곳이었다. 어쨌든 주영왕 12년(기원전 560년), 수몽의 아들 제번 대에 이르러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주경왕 6년(기원전 514년), 합려가 즉위하면서 고소성을 새롭게 고쳐 쌓았다. 주원왕 3년(기원전 473년),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하고 그곳을 차지해 월나라의 영역에 들었다.

주현왕 35년(기원전 334년), 초위왕(楚威王)이 월나라를 멸하고 옛 오나라와 월나라 땅을 모두 초나라가 차지해 초나라가 망할 때까지 초나라의 영역이 되었다.

초고열왕 원년(기원전 262년), 초나라의 재상인 춘신군 황헐(黃歇)이 강동에 분봉 받아 춘신군의 봉지의 일부가 되었다.

진시황 24년(기원전 223년), 진(秦)나라의 노장 왕전(王翦)이 초왕 부추를 사로잡고, 창평군과 항연[10]이 끝까지 저항했으나 끝내 패해 모두 죽고 진시황이 그 자리에 초군(楚郡)을 설치해 그 곳에도 군현제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초군은 훗날 구강군, 장군(鄣郡), 회계군으로 분할되었다.[12]

진시황 21년(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천하통일[13]을 이룩해 전국을 36개 군과 그 하위의 현으로 분할해 다스렸다. 그리고 고소 땅은 회계군에 속하게 되었고, 훗날 고소 땅에는 오현(吳縣)이 설치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