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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군부대의 장병 휴가 교통수단은 대부분 시외버스다. 3001, 3002번(동서울행), 3003, 3005번(도봉산역행)(선진고속→경기고속)과 와수리, 신수리 방면을 책임지는 강원고속이 전부. 이외에도 동송시외버스공용터미널에서 철원 버스 13이 다닌다.[35] 그 외 철원군 내 농어촌버스 노선에 대해서는 제일여객 문서를 참조. 백마고지역에는 통근열차 외에도 서울에서 출발하는 관광열차인 DMZ-train도 하루 1회 운행했지만 2019년 4월부터 2022년까지 운휴에 들어갔다. 대신 대체운송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원래 경원선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6.25 전쟁 이후로 신탄리역에서 끊겨 있는 경원선 철도의 잔여 구간 복원 공사가 2007년 후반부터 시작되었고, 2012년 11월 20일 신탄리 ~ 백마고지 구간의 완공으로 마침내 대광리역과 신탄리역이 있었던 신서면이 연천군으로 넘어간 지 40여 년 만에 군내 철도 운행이 재개되었다. 이외에 몇몇 지역 주민들이 경기 북부 쪽에서 연장하려고 하는 서울 지하철 7호선을 신철원 쪽으로 끌어오자고 주장하고 있다.[36]

현재의 백마고지역은 민통선 내의 외촌리에 있던 구 철원역보다 남쪽인 대마리에 위치해 있으며, 구 경원선이 아닌 신설된 노선(고가철도)으로 운행하여 터널을 몇 개 지난다. 백마고지역에서는 철원안보관광버스가 운영 중에 있다. 본래 구 철원역까지 연장하는 것을 철원군 주민들이 소망하였지만, 군사 문제로 인하여 대마리까지만 연장하는 것으로 결정되어 개통하였다.

하지만 철원군 주민들은 여전히 동송까지 연장하길 바라고 있다. 과거 철원에는 금강산선이 있었는데, 이 시절에는 대위리까지(464번 지방도 인근) 가서 금강산선을 타고 동송역에서 타고 철원에 내려서 서울로 가면 되었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연천 대광리 북쪽 신탄리역까지 잘렸으니...

향후 남북관계 개선 또는 남북연합 등 통일과정으로 경원선 남북구간이 연결되고, 남북 간 철도왕래가 잦아진다면 경의선 도라산역, 동해북부선 제진역과 더불어 철원역 또는 월정리역에 경원선 철도 남북출입사무소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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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의 지역은 철원권은 중부 방언의 경기 방언 중 양주 방언권에 속하며, 다시 말하자면 의정부, 양주, 동두천, 포천과 동일한 방언권이며, 사투리가 거의 없다. 강원도이지만 강원도 남부의 사투리, 경상도 억양과 발언에 가까운 사투리라던지, 강릉, 속초 등에서 일부 보이는 북방쪽 사투리같은 것이 거의 없고, 강원도 영서 지역 방언과도 좀 다르며 서울 지역 말씨에 가깝다. 오히려 가평군이 영서 지방 사투리를 사용한다. 철원에는 대부분 6.25 전쟁 이후에 정착한 주민이 많다. 2010년 기준으로는 3대에서 4대 이상 거주한 이들이라서 나름 자신이 토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면 김화 지역에서는 오래 살아오던 토박이들이 대부분이라서 강원도 영서 방언을 사용한다.

군의 생활권은 동송권, 갈말권, 김화권 세 곳인데 미묘하게 분위기가 다르다. 김화권 인사들이 철원지역에서 파워그룹을 형성한 탓에(국회의원 & 군의회 & 군수 등등) 안 그래도 동송권, 갈말권 주민들은 김화권 주민들을 적대하고 김화권 주민들은 나머지 권역 철원 주민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암암리에 있어서 선거 때마다 소지역주의가 발동하곤 한다. 철원 지역에서 군대를 마치고온 사람들이나 철원 출신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봐도 동송 & 갈말 지역과 김화권 지역은 주민들 정서도 완전히 다르고 김화권 주민들이 유난히 보수적이고 깐깐하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사실 6.25 전쟁 이전만 해도 철원, 동송 및 갈말과 김화는 완전히 남남이던 동네였는데 휴전으로 인해 남쪽에 남은 김화군 영역을 철원군에 합친 것이다 보니 이런 지역감정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근데 사실 갈말권은 신철원이라는 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송권과는 정체성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더 세부적으로는 동송 vs 갈말 vs 김화 구도이다. 이런 구도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구철원 시가지가 신철원 시가지보다 2배 가량 큼에도 불구하고 군청이 신철원 쪽에 있어서이기도 하다. 지리적으로도 가운데에 위치한 갈말의 경우 김화와 동송 사이의 중간지대적 성격이 강해 군수 선거에서도 김화와 갈말에서 현 군수에게 몰표를 주었고 동송 쪽에서는 나머지 후보들에게 표가 분산되었다.

철원은 행정구역상 강원도에 속해 있다 할지라도 경기 북부이자 강원 영서북부에 둘 다 속하는 특수한 지역이다.[25] 오히려 경기도 생활권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철원군은 강원도지만 도청 소재지인 춘천시, 강원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원주시보다 경기도 연천군, 포천시, 의정부시쪽에서의 접근이 훨씬 쉬운 편이다. 철원군청에서 춘천시청까지 75km 거리에 1시간 30분 전후로 소요[26]되고, 원주시청까지는 무려 170km에 3시간이 소요[27]되고 영동지방은 걍 쌩판 남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28]인데 비해, 철원군청에서 포천시청까지 30분, 의정부시청까지는 1시간 10분이면 갈 수 있다. 특히 동송읍 상노리 지역은 아예 포천시 관인면 소재지와 1k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어 포천에서 외곽 지역인 관인면은 동송읍 생활권에 있기 때문에 관인면 주민들은 시장을 보러 갈 때나 기타 볼일이 있는 경우 포천시내보다 동송읍내를 더 자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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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북서부의 군(郡) 중 하나. 이 지역은 강원도 전체 지역 중 최서단과 최전방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군의 북부로 휴전선이 지나간다. 경원선 월정리역의 녹슨 철도와 기차(철마는 달리고 싶다)가 보여주듯 남북 분단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군이며, 철원 노동당사, 제2땅굴 등의 국가안보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다.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경원선, 금강산선 부설 이후 강원도의 주요 교통 거점으로 강원도 제2의 도시였지만[3] 남북 분단과 6.25 전쟁으로 파괴되고 크게 쇠락했다.

궁예가 철원성을 세워 태봉의 수도를 천도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철원(鐵原)을 우리말로 풀면 '쇠벌'이 되는데, 서울(동음이의어) 문서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를 의미하는 '서울'이라는 말의 유래 중 하나라고 보기도 한다. 다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쇠벌'보다는 '쇠둘레'라는 말이 더 오랫동안 통용되었다.

동쪽으로는 양구군[4] 및 화천군, 서쪽으로는 경기도 연천군, 남쪽으로는 경기도 포천시, 강원도 화천군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휴전선을 경계로 북한령 철원군, 평강군, 김화군과 접해있다.

북한령 철원군은 원래 남한의 철원군과 한 지역이었는데 6.25 전쟁 이후 휴전선을 경계로 대부분이 남한에 편입되고 철원군 북부 지역만 북한에 남아서 주변지역을 합쳐서 만든 것이다.

남북분단 이전에는 동쪽으로 김화군, 북쪽으로 평강군, 서쪽으로 이천군, 남쪽으로 연천군과 포천군이 접하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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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철도는 없고 남해고속도로와 2번 국도, 13번 국도, 18번 국도, 23번 국도가 있다. 철도도 경전선의 보성역~임성리역 구간의 강진역이 착공해서 2022년에 개통할 예정이다. 다만 단선 비전철로 건설되는데다가 한번 건설이 중지된 적도 있는만큼 티스푼 공사의 가능성이 상당해서 제때 개통될 지는 두고봐야 한다. 나중에 생기는 강진광주고속도로가 개통이 되면 순천시 다음으로 전남의 두번째 교통요충지가 될 전망이다.

강진버스여객터미널에서 고속버스,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주의해야 할 사실은 강진버스여객터미널에서는 전라북도 지역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없다는 점이다. 전북 지역에서 운행되는 '강진'행 버스는 이곳이 아니라 임실군 강진면에 있는 강진공용버스터미널로 가는 노선이다.

군내버스가 운행 중이며, 인근 영암군과 완도군 일부지역까지 운행하고 있다.

군 단위 지역 중 드물게 버스도착알림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카카오버스와 카카오맵 등에서 실시간 도착 알림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군내버스다 보니 대부분 버스들이 하루에 몇 대 운행되지 않으므로 운행 시간표와 함께 참고할 것.

교통카드의 경우 티머니가 주 교통카드로 되어 있으며, 캐시비, 한페이, 원패스를 호환 이용할 수 있다. 호남권은 대부분 마이비카드 기반 캐시비가 독점하고 있는데 꽤 의외인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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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밀도가 적은 전라남도에서 또 돌출되어 있는 반도 지형인데다가 군 자체 면적도 진짜 쓸데없이 크다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상당히 광활해서[8] 타 도시로의 이동이 매우 불편하다. 고흥군 밖에서 가장 가까운 읍내인 보성군 벌교읍까지 나가는 데만 해도 약 30km다. 순천까지는 약 53km. 또한 27번 국도를 타고 고흥 초입인 동강면에서 도양읍까지 이동하는데 그 거리만 도로 기준으로 47km이다. 저 정도의 거리면 수원에서 서울까지의 직선거리에 달한다. 그래서 인구 유입은 거의 없지만 인구 유출은 상당하다. 나간 사람은 많지만 들어온 사람은 적단다. 특히 대학이 없고 일자리도 부족하기 때문에 젊은 인구의 유입이 드물며, 고령화율이 3명 중 1명 꼴인 36.7%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최고를 기록했다.[9] 그나마 예전부터 인구가 많아서 지금도 주변 군들에 비해선 인구가 많은 편이다.

77번 국도 고흥 - 여수 연도교 개통으로 여수 접근성이 나아지나 했지만 고속화된 15번 국도에 비해 선형이 훨씬 구불구불하여 고흥읍내 - 여수시내는 기존처럼 벌교까지 돌아가는 게 더 빠르다고 안내된다.

반도 지형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또 하나의 신기한 점이 있다. 2020년 초까지만 해도 육로로 고흥군에 가려면 반드시 보성군을 거쳐야 했다. 특히나 십중팔구는 벌교읍을 거치게 된다. 그래서 고흥과 벌교는 교류를 자주 한다. 아니, 지형상 교류를 할 이웃동네가 벌교밖에 없다(...). 이걸 잘 나타내주는 사례가 있다. 그동안 고흥군 학생들 사이에서 벌교고의 인기가 상당히 많아서, 벌교고 학생 3할이 고흥군 출신인 적도 있었다. 거기에 2014년 말에는 고흥 출신 벌교고 학생이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수시 합격했다는 현수막이 보성군 전역에 걸린 바가 있다(...).그리고 벌고 놈들은 그걸 또 70리나 떨어진 보성읍에다가 걸어놓을 생각을 했지 다만 2015년에는 고흥고가 거점고 지정 버프를 받아 학생들을 많이 끌어모았다고 한다.

남부지역이라 기온은 따뜻하지만 바다가 가까워 바람이 습해 차다. 그 때문에 실제 기온은 영상인데 체감온도가 영하를 찍는 날이 많다. 또한, 바다가 가까워 눈이 오는 날이 드물다. 눈이 오면 그날로 고흥은 아비규환. 실제로 2004년 1월 고흥읍 모 고등학교에서 겨울방학 보충학습 중 타지에서 출근을 하던 교사들이 아침에 내린 눈으로 출근을 못 하여 학생들이 5교시까지 자율학습만 하고 가던 일도 있었다. 사실 윗동네인 보성만 해도 눈 왔다 하면 선생님들이 못 내려간다고 징징댄다.

한센병으로 유서깊은 국립소록도병원이 소록도에 위치해 있다. 가보면 당시 한센인들의 처참했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과거 수용 인구가 수천 명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나 현재는 1000명 이하의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또한 오후 5시까지만 입장이 되니 참고할 것. 2009년에 소록대교가 완공되어, 지금은 버스로도 방문할 수 있다. 그 전에는 편도 500원인 배를 타고 들어갔다.

나로호의 발사기지인 나로우주센터도 이 곳에 있으며 사천시와 함께 항공우주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이미 3차례의 발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나로우주센터가 알려졌기 때문에 군에서 홍보를 한다.

영조 때의 기록에 따르면 장사가 많이 나온다고 했으며, 실제로도 고흥 출신은 왠지 모르게 힘이 센 것 같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박지성과 김태영, 김일, 노지심, 송영길 전 인천광역시장, 박남현이 있다. 더불어 미쓰라진 또한 힘 좀 쓸 것 같이 생겼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보여준 파이팅 포즈도 예사롭지 않다... "여수에서 돈 자랑, 순천에서 인물 자랑,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 마라"의 바리에이션 중에 고흥에서 힘 자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다.

고흥 류씨(高興 柳氏)의 본관이고 실제로 류씨들이 많이 거주한다. 그 외로 여산 송씨(礪山 宋氏), 고령 신씨(高靈 申氏), 나주 정씨(羅州 丁氏)도 많이 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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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 북쪽으로 영암군, 화순군, 서쪽으로 강진군, 동쪽으로 보성군, 고흥군, 남쪽으로 완도군과 접한다.

장흥에서는 '정남진'을 많이 듣게 되는데[4] 정동진과 같이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나오는 바다 라는 뜻이다. 2019년 6월 군에서 새로 개발한 일러스트에는 하얼빈과 장흥이 동경 126도 58분 35초로 일직선상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안중근 의사 사당인 해동사가 장흥에 있기 때문이며, 이후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인 2020년을 정남진 장흥 해동사 방문의 해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조선 8대 문장가였던 백광홍, 그리고 현대에는 이청준과 한승원, 송기숙, 이승우 등의 문학인들을 배출한 곳으로서 '문인의향'이나 '남도 최대 문인촌' 등으로 불리며, 요즘에는 '문림의향'을 밀고 있다. 그리고 군 규모에 비해 법조인이 많기로 유명하다. 인구는 약 4만명이다.

조선 시대에 호남 지방 가사 문학의 중심지였으며, 현재 문단에 등단해 정식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인의 숫자만 해도 120명이 넘는다고 한다. 문학의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인정받아 2008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되었고, 천관산에 천관문학관과 천관산문학공원 등이 조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장흥도호부로 승격되며 한 때 전남 남해안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강진과 비슷한 규모의 한적한 시골마을이 되어버렸다. 위치도 목포-광양-광주 세 중심 도시와의 거리가 그렇게 가깝지도 않고 세 도시와의 거리도 각각 비슷해 전남 내에서는 비교적 오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세 도시 중 목포가 제일 가까워서 전남을 3개 권역으로 분류할 때는 주로 목포권역으로 넣는 편이나, 3개 도시가 거리가 비슷하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광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봐야 한다. 우편집중국 담당구역 편성의 예처럼 광주권으로 분류하는 사례도 있었고.[5] 광주를 기준으로 장흥보다 더 가까운 보성도 광주의 영향력 아래 있지만 벌교읍의 존재로 인해 항상 순천권역으로 분류되는 것과는 대비된다.

하지만 최근 관광정책이나 군내 발전을 이룩하여 군세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1966년 14만명을 정점으로 크게 인구가 감소했던 지역이지만, 근래 들어 적극적인 귀농 정책의 성과를 보면서 인구가 아주조금씩 늘어나고 있다.참고로 인구보다 소가 더 많이 사는곳이다. 한우가 4만 5천마리라고..출처 현재에는 인구 4만명선을 되찾기 위해 장흥군에 생애 처음 전입한 부부에게 결혼 장려금 500만원을 지원하고, 회진면청년회는 전입 가정에게 농협상품권을 증정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과 이름이 헷갈리는 관계에 있다. 한자까지 똑같다. 거기에 장흥군이 장흥삼합, 물축제, 우드랜드 등을 만들면서 관광 산업을 발달시켰는데, 양주 장흥면 또한 산 좋고 물 좋은 교외 관광지로 이름나 있어 더욱 헷갈린다. 장흥군에도 역이 생기게 되면서 역 이름도 겹치게 되었다. 장흥역(교외선)은 폐선이고 장흥역(경전선)은 건설중이라 추후의 이름 변동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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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때인 538년, 지금의 해남 땅에 새금현(塞琴縣), 고서이현(古西伊縣), 황술현(黃述縣)이 설치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 전국 지명 한화정책에 따라 침명현(浸溟縣, 현산면), 고안현(固安縣, 마산면), 황원현(黃原縣, 황산면)으로 개칭하고 인근 양무군(지금의 강진군 지역)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 고려 시대에 해남현으로 고쳐 영암군에 속하였다.

조선 시대인 1409년(태종 9)에 진도현과 합하여 해진군이라고 하였다. 1437년(세종 19)에는 현감을 두고 해남현이 되고, 또 수군전라우수영을 두어 남쪽 해상 방비의 요지로 삼았다. 1895년(고종 32)에 현이 폐지되고 해남군이라 하였다. 1896년 다시 전라남도 해남군으로 개편하면서 부근 섬 지역을 완도군으로 이속시켰다.

1914년 강진군 백도면 일부 및 완도군 노화면 삼마도가 해남군 화산면에 병합되었다. 1921년 완도군 군외면 어불도가 송지면에 병합되었다.

1955년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73년 송지면 월송리가 현산면에, 마산면 복평리가 해남읍으로 편입되었다. 1983년 북평면이 북평면과 북일면으로 나뉘고 마산면 맹진리 일부가 계곡면 덕정리로 편입되었다. 1990년 옥천면 봉황리가 강진군 도암면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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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군청소재지는 해남읍 성내리. 면적은 약 1031.4㎢로, 호남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기초자치단체다. 이는 호남에서 유일한 네자리수 면적. 게다가 간척지도 넓게 조성되어 있어서 전국에서 경지 면적이 가장 넓다. 그래서 농업 종사자가 많고, 배추와 고구마로 유명하다. 북서쪽으로 목포시, 북쪽으로 영암군, 동쪽으로 강진군, 서쪽으로 신안군 산하 섬들, 남서쪽으로 진도군, 남쪽과 남동쪽으로 완도군으로 접해있으며, 섬을 제외한 한반도 본토에서 최남단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2016년 12월말 기준 7만 5천명으로, 50년 전인 1966년 당시의 23만에 비해 3분의 1 수준. 한 때 전라남도의 군 중에서 인구 1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2013년 9월부로 전라남도청이 있는 남악신도시를 끼고 있는 무안군이 해남군 인구를 넘어서 2019년 1월 현재는 2위[5]이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해남 겨울배추, 고구마, 김, 전복이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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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륜산은 가련봉, 두륜봉, 고계봉, 노승봉(능허대), 도솔봉, 혈망봉, 향로봉, 연화봉의 8개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이 중 가장 높은 봉은 가련봉으로서 높이 703m. 정상에 오르면 서해안과 남해안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한눈에 들어오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보인다.

어느 정도 네임드인 산 중에서 한반도 가장 남쪽 끝에 있는 산이다. 남쪽이다 보니 난대성 상록활엽수와 온대성 낙엽 활엽수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두륜산은 동백꽃으로도 유명하다. 산 여러 곳에서 동백나무가 자라는데 그 중에서도 대흥사에서 진불암까지 펼쳐지는 동백꽃길이 매우 볼만하다. 덤으로 억새도 무성히 자라므로 가을이면 그 경치가 좋다. 특히 가련봉과 두륜봉 사이 헬기장 부근에 억새가 무성하다.

두륜산 계곡에는 신라 진흥왕 5년(514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둔사(대흥사)가 있다. 이 절에는 보물 제320호인 삼층석탑을 비롯한 보물 4점, 천연기념물 1점, 기타 다수의 유물들이 있다. 두륜산은 대둔산 혹은 대흥산이라고도 불렸는데, 그 흔적이 대둔사라는 이름에 남아 있다.

북서쪽 산자락(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산24-4)에 천연기념물 173호로 지정된 "대둔산 왕벚나무 자생지"가 있다. 대흥사 뒷편 산기슭에 있는 것인데, 자생지라 하니 거창할 것 같지만 실은 왕벚나무 2그루(...)가 있는 곳이다 그래도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에서는 유일한 왕벚나무 자생지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왕벚나무는 희귀종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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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섬 지형이다. 동북쪽으로 바다 건너 해남군과 접하며 서쪽으로는 바다 건너 신안군의 섬들과 인접하며 동쪽으로는 바다 건너 완도군의 섬들과 인접하며 남쪽으로는 남해바다 경계로 제주특별자치도와 접한다.

육지인 해남군 문내면과 연륙교인 진도대교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다리는 현재 진도군의 공식로고에도 사용한다. 강화도처럼 사실상 육지에 준하는 느낌을 준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제주도를 제외하고 육로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다. 국토의 대척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직선거리로만 500km를 넘는다! 서울 - 부산간 직선거리가 330km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정말 끝과 끝이라 할 수 있다. 통일되면 1,200km쯤 된다.

진도의 대척점은 우루과이 동남부에 해당한다. 진도군 서쪽 끝[3]에 해당하는 팽목항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 중심부를 지나 올라오면 우루과이의 동남부에 위치한 로차(Rocha) 주의 소도시 카보 폴로니오에 도착한다. 이 곳 또한 해안가에 있는 도시다. 우리나라에서 육지 대 육지로 대척점이 형성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조선시대에는 무려 본토에 월경지도 갖고 있었다(!). 각각 영암군과 해남군에 둘러싸인 명산면과 삼촌면이었는데, 1906년 월경지 정리로 인해 인접 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는 조선 후기 제작된 전국지도인 대동여지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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