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 개요

삼국시대 이래 4세기 이전까지는 백제에 속했으나 고구려가 차지한 후 국원(國原)성이 되었다. 551년에 진흥왕이 이곳을 점령한 이후에는 신라에 속했다. 557년에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쯤 되는 소경으로 지정하고 558년에는 서라벌 인근의 부유한 백성을 국원으로 옮겨서 도시를 키웠다고 한다. 통일 이전에는 2소경 중 하나인 국원경이었고, 통일신라 때에는 5소경(五小京) 중 하나인 중원경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놓고 어떤 이들은 "충주를 차지한 나라는 전성기를 누렸다"는 발언으로 애향심을 고양하기도 한다.[10] 국보 제6호인 중앙탑(정식 명칭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은 이때 조성된 것으로 당시 이곳이 국토의 중앙임을 나타낸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충주목이 되었다. 1254년에는 국원경(國原京)이 설치되어 일시적이나마 서경, 동경, 남경에 맞먹는 위상을 차지하였으나 곧 폐지되었다.[11]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이 명칭은 유지되어 청주와 함께 충청도의 명칭을 이루었으나, 명종이 즉위한지 얼마 안 되어 터진 역모 사건 때문에 문정왕후에 의하여 반역향으로 찍혀 유신현으로 강등, 충청도란 이름도 한동안 충주 대신 홍주를 넣어 청홍도로 불렸다. 충주로 복구된 후에는 줄곧 충청감영이 있었으나 1602년 공주로 이전되었다.

 

 


구한말에는 충청북도 도청소재지였다. 1906년 감곡면, 생극면, 삼성면, 대소면, 금왕면, 맹동면 지역이 음성군으로 편입되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충청북도 도청소재지 지위를 청주에게 내주었다. 1914년 소이면이 음성군으로 편입되었고 감물면, 율지면이 괴산군에 편입되었고, 덕산면이 제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31년 충주면이 충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56년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되어 분리되면서, 나머지 충주군 지역은 충주의 통일신라 시대 이름인 '중원경'에서 따와 '중원군(中原郡)'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 괴산군 상모면이 중원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도농통합으로 중원군이 충주시에 병합되었고, 그 해 3월 주덕면이 주덕읍으로 승격되었다. 2005년 상모면이 수안보면으로, 2012년 이류면이 대소원면으로, 2014년 가금면이 중앙탑면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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